diary/오동이의 앞마당 2011. 3. 2. 05:46








제가 사는 곳은 성북동입니다.
성북동에서도 지대가 높고 막힌 곳이 없어 맑은 날에는 종로가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산의 능선이 보이기도 하며 바로 창 밖으로는 서울성곽이 지나갑니다.



서울 한 복판이건만 드물지 않게 까마귀를 볼 수도 있고.












운이 좋은 날이면 망원렌즈 없이 날아가는 까마귀를 찍을 수도 있습니다.












으슬한 감기기운에 생강차가 생각날때면 집에 갖춰놓지 않았어도 뭉기적 걸어내려가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차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언덕길을 다시 걸어 올라가야 하는건 힘들지만 가끔은 이런 마음의 휴식이 누워있는 것 보다 더 좋은 약이 되기도 하니까요.












겨우내 칼바람을 막을 곳도 없이 난간에 매달려 있던 은행조팝은 물 한번 챙겨 준 일 없건만 올해의 첫 비를 맞자 거뜬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난해 키작고 가느다란 가지에 소복이 달렸던 꽃은 사방에 씨를 뿌렸고 아직까지도 잊을만 하면 하나씩 이렇게 싹을 틔워 올립니다.











얼마전 소목이의 오줌테러를 당한 화분에 심겨있던 마지막 야로우 한 포기도 더이상의 테러를 피해 작은 화분으로 옮겨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아직 봄은 멀었건만 이제 실내에는 키 작은 벤자민 두 그루.











그리고 새 잎이 소복이 나오는 헬리오트로프와 그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 란타나만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며 남아있습니다.











가마가 있는 건조한 공간에서 힘겨운 겨울을 보내며 용케도 살아남은 헬리오트로프.

얼마전에 들인 다육이들은 아무래도 선물을 해야하지 싶습니다.
그도 그럴게 3년을 벼르던 꽃나무 네 그루를 더 들였거든요.












봄이면 흰 꽃이 탐스럽고 가을부터 겨우내 새빨간 열매로 눈을 즐겁게 해 준다는 가막살나무.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건 가을이면 어설픈 단풍이 드는 둥그스름한 잎사귀입니다.
가막살나무의 빨간 열매는 새들이 좋아한다는데 내년 겨울 제 창가를 찾아오는 새가 있으면 참 기쁠것 같습니다.











여름꽃은 나무수국이 책임질겁니다.
저는 알록달록 화려한 수국보다 흰 나무수국을 더 좋아하는데 몇해 전부터 탐을 내면서도 선뜻 손을 대지 못 하고 있다가 작년 여름 단골 찻집에서 삽목된 작은 나무수국을 보고서 불이 붙어 냅다 질렸죠.
헌데 제가 원했던건 작은 가지 하나였는데 어째 손에 넣은건 음... 집에있던 조팝나무보다도 훨씬 가지가 풍성한 나무네요.












세번째는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의 왕벚나무입니다.
벚나무를 화분에 키운다는건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골목 아랫집의 화분도 아닌 플라스틱 음료박스에 심겨진 커다란 벚나무를 보고 시도해볼 마음이 들었습니다.
헌데 이건 또 기대와 달리 잔가지 하나 없이 삐죽한 대 하나가 왔지 뭡니까.
이걸 언제 키워서 잡아먹으려나요.













마지막 나무는 월계수를 닮은 팥꽃나무인데 연 자주빛 꽃이 잎 보다 먼저 가지 가득 달리는 모습이 얼핏 연보라색 개나리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것도 잔가지 없는 가느다란 대 하나만 날아왔습니다.

사실 윗 사진들은 전부 웹에서 가져온 이미지이고 새로 들인 나무들은 화분도 없이 비죽한 대를 뿌리만 동동 말아 팔려왔기 때문에 올해 꽃을 보기는 어려울겁니다. 택배 박스에 담겨와 성북동에 자리를 잡은 이 빈약한 네 그루의 나무들이 작년에 먼저 온 조팝나무와 함께 내년 봄 꽃을 피워 올리는 모습을 한껏 기대하고 있건만 오동이 아부지는 어째 살아남아 여름을 넘기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분위기로 몇 번이고 "여름만 넘겨봐라, 여름까지 살아남을까?" 를 반복 하시기에 웬지 약이올라서 여름을 넘긴 기특한 놈들에게는 도자기 화분을 상으로 내려주십사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가장 싼 나무는 오백원, 가장 비싼 나무가 오천원이니 도자기 화분으로 갈아타게 되면 그야말로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 되겠네요.











컨디션이 좋지 못해 누웠다 일어났다 반복하며 느릿느릿 꿈지럭 대는건 저 뿐만이 아닙니다.











소목이도 기침을 쿨럭대는데다 스트레스성 장염으로 내내 배앓이를 하느라 둘이 함께 굴러다니고 있거든요.











생각해보면 소목이도 저도 몸 컨디션은 별로인데 기분은 꽤나 좋은편인듯 합니다.
소목이야 몸이 아프니 어리광이 늘었는데 그걸 제가 죄다 받아줘서 좋은 것이지만 저는 왜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 잘 될것만 같고 그러네요.








아래는 열 식힌다는 핑계로 목도리 돌돌 말고 창턱에 붙어앉아 괜히 찍어놓았던 바람소리, 빗소리, 음악소리 입니다.
그냥, 괜히,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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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aho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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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아렌

    봄이니 겨울이니가 이 얘기셨군요. 이제서야 이해가 갔습니다.
    저도 조용한 음악 소리 들으면서 따땃한 구들에서 차 한잔 들고 싶네요... 너무 낭만적이에요 하아

    2011.03.02 06:17
  2.  Addr  Edit/Del  Reply 사자비

    성북동의 분위기가 마치 제가 사는 동네와 비슷하군요. ^^;

    2011.03.02 06:25 신고
  3.  Addr  Edit/Del  Reply 하빈

    애엄마에겐 오늘이 새해 첫날이죠. 식구들 다 나가고 나혼자 앉아 전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야죠!

    2011.03.02 08:23
  4.  Addr  Edit/Del  Reply 쿠오엘

    팥꽃나무 색이며 꽃이며 너무 이쁘네요. 꼭 여름 잘 이겨내고 고운 도자기화분으로 옮겨져서 내년에 예쁜 꽃 피웠으면 좋겠어요.

    2011.03.02 08:58
  5.  Addr  Edit/Del  Reply celin

    정말 운치가 좋고 멋지네요. 나도 저기서 생강차 마시고 시포요~

    2011.03.02 09:39
  6.  Addr  Edit/Del  Reply 우림

    아! 자리털고 잇나셨군요! 글 기다렸어요. 저도 제라늄 씨앗하고 개박하.. ㅋㅋ 캣민트랑 라벤더 씨앗 주문했어요. 제라늄 파종한 것도 잇는데 다행히 나니가 씹어먹진 안네요. ^^* 나니용 귀리도 잘자라고 있구요. 제라늄이나 라벤더나 캣민트 관심있으심.. 좀더 자라거덩 나눠드릴께요. 저는 신월동 사는데 결혼 전에 산밑에서 살았던지라...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참 그리워요. 지금 집도 오질나게 ㅋㅋ이뿌지만 신랑하고 이런 얘기하고는 해요. 나중에 "조대로" 돈벌면 성북동에서 살자구요. 헤헤

    2011.03.02 11:49
  7.  Addr  Edit/Del  Reply 안티고네

    아... 사진들 넘 좋네요.
    잇달아 초상을 두 건이나 치룬 저에게
    다육이를 선물로 주세요... 보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게요...

    2011.03.02 14:51
  8.  Addr  Edit/Del  Reply 소목이 사랑

    메이님, 항상 좋은 일만 있을거예요. 그럼요, 그렇구말구요^^

    2011.03.02 16:19
  9.  Addr  Edit/Del  Reply 큐라마뇨

    저희집 금전수는 옆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가지는 자꾸 잘라주다보니.. 어느새 원래 들어올때 있는 가지보다 새로 돋아난 가지가 더 많아졌어요. 그덕에 애들 키도 작아졌구요..^^;; 가지가 살은 안찌고 위로 올라가서 영 걱정입니다. 일광욕을 못해서 그런가봐요.. (하지만 베란더 넘 추워요..ㅠㅠ) 으으.. 속같아선 영양제라도 하나 흙에다 푹 꽂아놓고 싶습니다요. 그럼... 죽겠죠...? ㅡ.ㅡ;;

    2011.03.02 17:47
  10.  Addr  Edit/Del  Reply 류하

    전부터 늘 생각하지만 메이님네 동네가 넘 부럽네요 ㅋㅋㅋ

    2011.03.03 00:52
  11.  Addr  Edit/Del  Reply 바람의라이더

    아앗 저 찻집!! 혹시 수연산방 아닌가요~~~?

    저도 성북동에서 살고 싶어요 ㅠㅠ

    2011.03.03 14:25
  12.  Addr  Edit/Del  Reply 눈떼굴

    성북동 창가~

    앉은새~

    누가 사냥하나요~

    쿨럭;;;; 창가에 새가 날아드는건 낭만적 이지만 고양이가 9마리 아닙니까.

    2011.06.17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