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웅얼웅얼 혼잣말 2011. 3. 11. 06:02





부제 : 이 고양이가 사람 잡네.




잘 쓰고 있던 소중한 키보드가 엊그제 고장이 났습니다.
흙을 빚거나 초벌 기물을 손질하거나 그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등 손을 많이 쓰는 저는 꽤 고가의 키보드도 조금만 쓰면 바로 손목과 손가락의 관절이며 인대에 무리가 오는지라 제 손에 맞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요, 사진의 키보드는 아주 고가는 아닌데도 제 신체 구조와 잘 맞는지 이 키보드로 바꾼 뒤로는 키보드로 인한 통증은 모르고 살았었습니다.










헌데 이 소중한 키보드에 문제가 생긴겁니다.










작년 겨울 크게 앓았던 야로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직 건강한게 아니다보니 아직도 꽤 자주 토하곤 하는데 운 나쁘게도 키보드 자판에 정통으로 토해 놓았지 뭡니까. 










완전히 먹통이 되어버린 키보드를 혹시라도 살릴 수 있을까 하고 청소를 한 뒤 꼬박 하루를 말려봤습니다.










작업 방식상 컴퓨터가 없으면 일정이 완전히 꼬이는지라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오동인 키보드 자리가 비었다며 마냥 신이 나는 모양입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컴퓨터가 켜져있으니 마우스 조작만으로 원하는 사진을 찾아 보고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원을 꺼 두는게 좋겠다 싶어 컴퓨터를 껐던게 두 번째 악재였습니다. 제 컴퓨터는 락이 걸려있거든요.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못해 쓸 수가 없게 된겁니다.











당장 새 키보드를 사러 달려나가야 하나, 이 키보드가 아무데서나 다 파는 건 아닐텐데,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고 당장은 만원짜리 키보드를 나가서 사 올까, 아니면 주문을 한 뒤에 새로 살게 아니라 친구에게 키보드를 잠깐 가져다 달라고 하고 기다릴까, 생각이 얽히고 설켜 어째야 할지 마냥 당황한 와중에 단골 쇼핑몰의 구매 기록을 확인해보니 구입한지 딱 3년 하고도 1주일이 지났다는 걸 알게되었죠. 그 순간 `아! 3년이 안 넘었으면 A/S(무료교환) 가능할텐데...!' 하는 생각에 연달아 떠올랐고 죽이되건 밥이되건 전화라도 해 보자 하고 A/S 센터의 전화번호를 검색해 문의를 했습니다.
 
상담원에게 고양이가 토한 뒤로 키보드가 먹통이라고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구입한지 3년 1주일이 지났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접수를 받아주네요?
오호라 땡잡았습니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는 A/S 신청시 수리를 하는 게 아니라 새 제품으로 무상 교환을 해 줍니다.
헌데 제 기억으로는 구입후 3년까지로 기한이 정해져 있었고 한 번 교환을 받은 시점에서 2년 이내에 첫 교환 증명서를 동봉하면 두 번째 무상 교환을 마지막으로 받을 수 있는걸로 알고있었는데요, 이 키보드는 3년이 넘었으니 유상 A/S를 하는셈 치고 소액으로 재구매를 할 수 있을까 하고 문의을 했던건데 그냥 무료교환을 해 준다지 뭡니까. 단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만 그런들 어떠하리! 완전 만세인거죠.











택배로 교환을 받겠느냐 직접 센타로 찾아오겠느냐 묻기에 한시가 급한 저는 다음날 찾아가겠노라고 했고 상담원은 친절하게 찾아오는 방법을 설명 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저는 매일 출퇴근 하는 길도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길을 잃는 중증의 길치인데다 메모를 한들 메모지 자체를 두고 나가는 일도 흔한 일이라 잽싸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역시나 메모는 두고 나갔습니다.)










기한이 넘긴 제품이라서인지 구매 영수증을 출력해 오라고 하는데 컴퓨터가 켜져야 프린트를 하죠,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는 걸로 대신 할 수 없겠느냐 물었더니 아마도 가능할거라고 불투명한 답변을 하면서도 서류 첨부가 필요한 건 아니니 확인만 가능하면 될거라더군요.
이것도 미리 집에서 확인해서 캡쳐해뒀습니다. 정말 준비 꼼꼼하게 했어요.










출발전에 지하철 노선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전 얼마전 동네의 아이폰 A/S 센터를 찾아가는 길도 잃고 한 시간을 헤멨던 위인이니 이 정도는 해야합니다.











요즘 지하철 앱 좋더라구요.
용산역을 터치하니 바로 역 주변 정보를 볼 수 있게 지도가 뜹니다.
제 첫번째 목표지는 용산역 2번 출구입니다.










그걸로도 부족해 인터넷 검색으로 해당 건물의 사진을 찾아 이 역시 캡쳐를 했습니다.
사진을 보니 오래전에 몇 번인가 가 봤던 동네네요. 낯이 익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미아 발생입니다.
왜냐고요?













역 밖으로 나왔는데 오른쪽이고 왼쪽이고 다 가 봤지만 상담원이 설명한 주차장 사이 길도 안 보이고 건너편엔 영 생뚱맞은 길이 보이는데 이를 어쩌나요, 길치지만 지도는 잘 보는데도 내가 있는 이 곳이 저 지도의 어느 위치인지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아뿔사, 2번 출구로 나가라고 했는데 제가 나온 출구는 1번이었던거죠, 헌데 돌아가는 방법을 모르겠는겁니다.
다시 표를 끊고 들어가 2번 출구를 찾아서 나갔어요. 그런데 거긴 또 어딘겁니까, 오른쪽? 오른쪽으로 가랬어요, 가봤는데 이미 정신이 혼미해지고 넋이 나가 또 빙빙 돌았죠. 왜냐면 캡쳐한 윗 지도와 너무 다르거든요! 전 지도는 잘 보는 여자라니까요.

아... 그렇게 한 시간을 헤메고서야 알았습니다.
이거 왜 이래요,
지하철 앱 잘 나왔다면서요,
용산역 정보라면서요,
중앙에 떡 버티고 있는 역사가 `신용산역'이라는 걸 제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요!!
어째서 `용산역 1번 출구' 만 귀퉁이에 삐죽 나오고 신용산역이 떡허니 중앙에 뜨냔말입니다.












이제서야 지도상의 제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볼 수 있겠네요. 저 위의 캡쳐 화면 왼쪽 상단에 표시된 1번 출구와 제가 가야 할 2번 출구는 하늘 만큼 땅 만큼 멀리 있었던거죠.
열심히 걸었습니다. 2번 출구를 찾아 나가서 미로 같은 통로를 걷고 또 걸어갔는데 이번에는 또 밑으로 내려가서 정면이 아닌 왼쪽 문으로 나가라고 했잖아요, 거기 횡단보도 없던데요, 횡단보도는 정면의 출구로 나가야 있던데요, 왼쪽 끝까지 갔다가 중앙으로 돌아오느라 70m는 더 걸었잖아요, 횡단보도를 건너 주차장 사이 길을 빠져나가니 그제서야 인터넷에서 찾아 캡쳐했던 국민은행 건물이 보입니다. 어우 근데 오지게 멀어요. 어쩝니까 가야죠. 진이 빠져 헉헉대며 사진속의 건물 6층으로 올라가니 영수증이고 나발이고 확인 할 것도 없이 접수 번호 불러주니 그냥 슥 바꿔줍디다.











이 거대한 키보드 상자를 들고 두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 주차장 사이 길을 통과해 또 횡단보도를 지나 터미널 상가 1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 용산역으로 통하는 길고 긴 통로를 건너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숨 돌리는 순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지나쳐 신당역에서 아차 하고 다시 내려 반대편으로 건너가 다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으로 돌아가 4호선을 갈아타고 빈 자리를 발견해 궁둥이를 걸치고서야 "만세~ 집에 가는 지하철을 탔어!!" 하는 기쁜 마음에 이집 저집에 문자로 그 기쁨을 알렸습니다.










다행히 한성대입구역을 지나치지는 않았어요, 마을버스도 잘 맞춰 탔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새 키보드를 자리에 얹었다는 숨차고 허기지고 기운 빠지는 긴 이야기였습니다.
어우... 야로 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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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aho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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