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s/열한마리 고양이 2009. 5. 5. 07:58

[ 양양 ]
함께 살던 친언니의 첫 작품.
단지. 울음 소리가 `양! 양!' 하고 끊어 운다고 해서 `양양' -_-
간혹 `미스 양'이라고 부른적도 있으나
그보다는 `양뚱, 대비마마, 폐비양양'으로 불리웠고
주로 `반인반묘'로 통했다.
다섯살이 넘어서는 `광묘'(미친년)라고 불리기도 했다.








 [ 1997 4월 일원동 ]
사실 양양을 언제 데려왔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양양을 데려온것은 언니였고 어렴풋 97년 초로 기억하는지라
언니의 생일인 만우절을 양양의 기념일로 삼았으며
병원의 진료 카드에는 1997년 1월 31일 출생 추정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느날 아침 눈을 뜨니 목 위에 걸쳐져 건너가느라 바동거리는 털덩이가 있었고
옆에는 지금은 시집간 친 언니가 손바닥을 쫙 벌리고 팔딱팔딱 뛰면서 좋아하고 있더라.
이 아줌마.. 시집가면서 데려갈것도 아니면서 고양이는 왜 주워왔나 몰라,
 어쨌거나 그렇게 양양을 만나면서 내 인생에 고양이가 재등장했다.





얼마나 작은지 처음 왔을때는 귀도 덜 서 있었다.
사실 양양을 만난것이 3월인지 4월인지 정확히 모른다.
아는건 누군가 죽으라고 박카스 상자에 담아 쓰레기 더미 속에 뭍어둔것을
언니 친구의 아버님께서 캐 오셨다는것 뿐.
그 박카스 상자에 냉면집 빨간 깃발을 깔고 내 집에 왔다.

그 시절 집 안에 고양이라고는 양양 뿐.
누렁 털을 입은 업둥이 하나를 데려왔을때
외동이 시절을 음미하던 양양은 신경성 위염으로 피 토하고 신경성 장염으로 피똥 싸고 난리도 아니었다지.
양양의 예민한(으로 쓰고 더러운으로 읽는다) 성격을 처음 알게 된 사건이었다.







[ 1998 신림동 ]

뚱한 성격에 배도 살풋 나오기 시작하던 이 시기 양양은
가끔은 그 도도한척 하는 행동 탓에 `대비마마'로.. 위의 이유로 주로 `양뚱'이라 불렸었다.
양양과 짝을 지워주려 데려왔던 고리를 잃어버리고
고리를 동네 밖으로 쫓아낸 주범이자 하루가 멀다하고 메이를 물어뜯어 피작살을 내던
`조폭'이란 이름의 들고양이가 양양과 짝을 지어 새끼를 낳았다.
그래도 애들은 이쁘더라만.

양양과 조폭 사이에서 낳은 새끼들중 유일하게
'마야'만 우여곡절 끝에 행복하게 살고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전해듣곤 한다.

거의 1년쯤 지났을때 장성한 고리가 돌아와 조폭을 몰아내고 양양과 짝을 지었을때,
온 집안의 경사였다.



위의 사진은 고리를 잃어버리기 이전.. 고리가 약 5개월령이던 시기의 커플샷으로
이 사진만으로 고리가 얼마나 기골이 장대했는지 알수 있다.
겨우 5개월 꼬마가 무려 다 자란, 그것도 암컷으로서는 체격이 큰 편인 양양보다 크잖아!



양양이 고리의 새끼를 낳아 키우던 시절.
친구가 동구협에서 데려온 젖먹이 남매를 양자로 들여 키웠다.



양양이 배 앓아 낳은 언니야, 큐리, 신디와 거저 얻은 치치, 미르, 5남매중
제주도 산등성이를 뛰어놀았을 언니야는 소식이 끊겼지만
행복하게 살다가 떠난 신디,
간간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훔쳐볼수 있던 큐리, 치치, 미르, 셋이 있다.

두번의 출산으로 몸매가 흐트러지고
사람을 불신하던 성격이 바뀌며 점점 도도한척 거리를 두는 모습이 사라지면서
대비마마는 `폐비양양'으로 불리웠다.




[ 1999년 신림동 ]
참한 새댁 시절의 양양.



지금은 저 단정하고 다소곳한 모습은 간데 없고 거의 어르신의 포스를 풀풀 풍기고 있는듯.. 하지만
사실은 위의 사진은 사기도 보통 사기가 아니다.
사진을 스캔 해준 친구가 있는솜씨 없는솜씨 다 부려 참한 새댁의 모습으로 연출을 한것으로
이 무렵 부터 한동안 양양은 이름 대신 `반인반묘'라고 불리웠다






[ 2000년 한남동 ]
이 무렵 양양은 호신견에 비교되곤 했었다.
신림동 시절 메이를 물어 피작살을 내던 동네 고양이 조폭과 싸우다
피 철철 흘리며 응급실에 실려갔던 이후로
높은 위치에서 고양이가 으릉대고,
내가 무릎 꿇고 있는 상황이면 양양은 눈이 돌아간다.
상대 고양이가 나를 공격했다는 착각에 미쳐 날뛰는 고양이 처럼 제녀석이 이길수 없는 상대거나 말거나
이성을 잃고 달겨들어 물어찢고 싸운다.



생선조림 냄비를 바닥으로 집어던져 찹찹 먹고있던 제제가
내 야단에 놀라 렌지 후드 위로 달아나 냥냥투덜투덜거릴때
내가 무릎 꿇고 생선조림을 닦아 치우는걸 보았을때도 그랬다.

미친 고양이 처럼 달겨들어서 싸우고 또 싸우고
제제를 찾아가 또 싸우고.
싸움 끝에 윗턱뼈 절반이 바스라지고 송곳니가 뽑혀 날아갔어도
또 덤벼들어 싸우고 또 싸우고.

제 첫번째 서방 조폭을 물어뜯어 동네 밖으로 몰아냈을때 처럼
눈이 돌아가 싸움을 했다.



매일 매순간 싸워대는건 아니었지만.
가끔씩 이 얼굴로 눈빛을 번들거리며 이기지도 못할 커다란 수컷과 싸움질을 할때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 2001년 성남 ]
사실 양양은 이런 표정도 지을줄 안다.
하지만 이건 가족에게만 보여주는 표정.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 2002년 버티고개 ]



보통때의 양양은 앞발가락에 회칼을 품고
철철 흘러 넘치는 카리스마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뿜어내곤 한다.







[ 2003년 약수동 ]



양양은 보통 이렇게 새초롬하게 바라보다가도.





순식간에 이렇게 돌변하는 변화무쌍한 표정을 가졌다.





[ 2003년 혜화동 ]
관심을 받고 싶을때면 이렇게 동상 처럼 등을 돌리고 앉아서 마냥 기다린다.
만져주거나 쓰다듬어줄때 까지 인공위성 처럼 내 주변을 뱅뱅 돌며
정확하게 나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서 이렇게 시위를 하곤 하는 아줌마.








[ 2004년 혜화동 ]
메이, 나오미, 잭과 끊임없이 자리 싸움을 하는 양양.
인간불신에 찌들어 살던 어린시절은 잊은지 오래인듯,
비좁은 내 무릎에 달라붙어 살고파한다.








[ 2005년 삼선동 ]
이번에는 양양이 이겼다.

 

양양은 배 위에,
메이는 품 안에.




 

여전히 가족에게는 귀여운 표정을 보여주는 양양.




[ 2006년 성북동 ]



성북동 작업실에 자리를 잡은지 겨우 한달.
여기서 부터는 9년 넘게 흘러간 시간 보다 더 행복하게 살자 양양.






[ 2007년 성북동 ]
전 세계적으로 멜라민 사료 파동이 있었다.
남의 이야기로만 알았던 사료파동은 당연히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평소 간식이나 습식을 잘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양양의 열살맞이를 축하하며
양양만을 위해 뉴트로 초이스 시니어 파우치를 한박스 주문했다.

그 파우치를 단 한개 남기고 다 먹었을 무렵 사료 리콜이 시작되었고
한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료만 수입되었다는 수입사들의 주장만 있을뿐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었으니 하나 남은 파우치를 먹일수 없었다.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던중 
해당 사료들은 수입 본사들에서 모두 수거해갔기에 시중에서 구할수 없으니
사료 성분 검사를 위해 개봉하지 않은 리콜목록의 사료를 찾고있다는 글이 올라왔고
리콜 목록에 올라있었으나 문제의 사료는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되풀이되던 뉴트로초이스 시니어 파우치,
단 하나 남아있던 파우치를 해당 기관으로 보냈다.

사료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던 사람의 주장으로는
그렇게 얻은 사료들중 최소한 하나 이상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었으나
정부에서 그 기관에 검사결과를 공표하면 지원을 끊겠다는 협박을 받았기에
어떤 사료에서 검출되었는지 어느 누구도 증명할수 없으며
멜라민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양양은 가족중 유일하게 신부전 판정을 받았으며
비슷한 시기에 역시나 리콜 목록에 들어있던 사료를 주식으로 먹던 친구의 두마리 고양이중
피코가 급성 신장질환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 2008년 성북동 ]
병원의 말에 의하면 아무때고 갑자기 털썩 쓰러져 죽을수도 있는 상태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신부전 말기에 해당한다고 하는 양양은 건강하다.

식욕은 여전히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신장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지 않는지라 만성 탈수를 갖고있기에
시시때때로 병원과 상의한대로 적정량의 수액을 피하에 주사하는 정도의 케어를 하고있을뿐.

갑작스레 식욕부진이 오거나나 위급상태로 돌변해 병을 이기지 못할것을 대비해
꽤나 두둑하게 살집을 올려두어 아무런 약물이나 병원 차원의 도움 없이도 오히려 예전보다 더 튼실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기분이 좋아보인다.

가끔 이 여자가 벌써 치매 초기인게 아닐까 의심이 드는 행동을 할때도 있지만
오히려 치매라면 더 좋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있다.
바보는 늘 행복하다고 하니 병의 고통을 느끼지 않을수 있다면 치매인들 어떠리.







[ 2009년 6월 ]
신부전 말기의 진단을 받고도 해가 두 번 바뀌도록 병 따위는 없다는듯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내온 양양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지내왔던 양양의 병이 드디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심한 구토로 탈수가 급격히 진행되고 음식을 넘기지 못하며 입 안에 심한 염증이 생겨
아무도 없는곳과 물 냄새가 나는곳을 찾아 엎드려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 양양의 사진을 찍어 새로운 기록으로 남길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시작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은 함께 할 수 있다는것도 기쁜 일이 아닐까.

12년 반 만에 양양과 함께 하는 삶의 마지막 장을 펼치며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가 되었건 가능한 아프지 않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기를,
기도한다.




[ 2009년 6월 11일 ]
양양 일생의 첫 외박.
최후의 최후까지 사진을 찍고 모습을 남겨 우리의 마지막을 온전히 공유하고싶건만
퇴원이 불투명한 입원길에 사진기를 들고 나갈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한술 더 떠 핸드폰이 방전되어 남겨놓을 길이 없다.

양양 첫 외박의 기록.




[ 2009년 6월 12일 ]
무계획으로 시작된 만남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십수년간 이별을 염두에 두고 수없이 많은 생각을 반복하며 계획을 세웠고 만성 신부전의 진단을 받은 그때 이별의 순간에 내 감정의 방향, 모습,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마음을 다잡고 하나 빠짐 없이 수만갈래의 행동 패턴을 떠올렸다 지웠다 연습을 해 왔건만 정작 입원을 시키며 깔개 한장 덮게 한장을 준비하지 못했기에 전원을 켜 따뜻해진 입원실에 하얀 패드만 깔고 앉은 양양을 바라보며 입고있던 티셔츠라도 벗어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멀지 않은 홍대 앞으로 헐레벌떡 달려가 싸구려 티셔츠를 하나 사 입고 입고있던 티셔츠를 벗어 양양의 머리맡에 베게삼아 깔아주고 숨을 돌리자 마자 양양은 무겁게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비척대며 걸어들어가더니 네번째 발이 모래상자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선 자세 그대로 마치 조준이라도 한 양 벗어놓은 티셔츠 위에 오줌을 싸 제낀다.

미친듯이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래, 이런 여자였지.
언제 어느때고 날 웃게 만들던, 끝까지 날 웃겨 죽이려는 대단한 여자.
질금질금 흘러나오는 눈물을 찍어내며 병원이 떠나가라 웃을수밖에 없었다.

입원한지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구질구질하게 살기보다 성정 그대로 깔끔하게 떠났다는 소식을 받고 데리러간 양양은 밤새 맞은 수액 덕에 전날의 마르고 생기 없는 모습이 아니라 평소의 든든한 모습 그대로였다. 
깃털처럼 가볍던 녀석을 놓고 왔건만 다시 받아 안은 양양은 어찌나 묵직하던지.

평소 쓰지 않던 모래가 엉겨붙은 발이며 신부전으로 인한 구내염으로 더러워진 얼굴이며 깨끗하게 씻겨놓은 양양은 언제나 머리맡에서 잠을 청하던 그 모습 그대로, 편안한 모습으로 자신을 위한 마지막 손님들을 맞는다.





저 가지런히 모은 뒷발이, 그 위에 슬쩍 올려놓은 꼬리가.
너무 예뻐서 내 감정이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떠올릴 겨를도 없다.

이렇게 많은 술을 마셔본게 얼마만일까.
맥주 반 캔에도 새빨갛게 달아올라 킬킬 웃다 잠드는 사람이
독한 커피주 반잔에 머루주 두잔 복분자가 두잔 매취순이 석잔 오디주 한잔을 마셔도 취기가 오르지 않아
술 잔을 한잔 한잔 세고 있다.

양양을 만나러 먼길 가까운 길을 막론하고 달려온 손님들은 늦은 시간까지 줄을 이었고,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마지막 손님들과 웃는 얼굴로 헤어졌던듯 하다.




[ 2009년 6월 13일 ]



친구들이 양양을 위해 준비해준 꽃과 함께 마지막으로 한번 더 들여다본다.
여기까지.
식장에서 장례식을 따로 치르지 않을 생각으로 이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으려 했는데.
그간 수 차례나 지켜봤던 화장 순서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화장 가마로 안겨들어가는 양양의 흰 어깨를 보니 흔들린다.
일생 단 한번도 내 손에서 놓아본적 없는 녀석인데.
어째서 내가 안고 들어갈수 없는걸까.
이 짧은 기록으로 어떻게 다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기록을 남기는것이 어떤 의미를 갖게될까.
고작 남겨진 사진들과 글 몇 줄로 내가 얻은 기억과 감정과 풍요로움을 어떻게.
내 인생의 첫 숙제를 마친듯 이제서야 죽음까지의 모든것을 온전히 함께 했다는 충족감을. 
물 밑의 격류를 담고도 고요하게 보여지는 큰 물과 같은 감정을.
이 아쉬움을.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더라.
모르겠다.





 
 
posted by Yaho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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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ddr  Edit/Del  Reply 으녕남편

    고통없는 행복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9.06.19 17:31
  3.  Addr  Edit/Del  Reply 룽맘

    양양이........

    2009.06.19 23:06
  4.  Addr  Edit/Del  Reply 익명

    비밀댓글입니다

    2009.06.25 05:23
  5.  Addr  Edit/Del  Reply 익명

    비밀댓글입니다

    2009.07.21 13:10
  6.  Addr  Edit/Del  Reply 빨간리본

    오늘에서야 양양소식을 알았어요.. 제가 냥이네 댓글단걸 보시고 어떤 분이 양양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말해주셔서..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파요.. 어찌 이런일이.. 늦었지만.. 양양씨 좋은곳으로 가길 바래요.. 너무 멋찐 고양이였는데..

    2009.08.01 17:02
  7.  Addr  Edit/Del  Reply 시마리스

    양양이 이야기를 하면 특별히 떠오르는게 없어요. 내 맘엔 그저 예쁘고 문득문득 생각나서 보고싶은 친구.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 안오나 궁금해하고있지 않나..(예나 지금이나 나만의 착각ㅎㅎ) 곁을 떠나서 마음이 아리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양양이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져요. 아마도 언니가 양양이를 대하는 마음이 더 크게 와닿아서 일수도있고..나조차도 알아온 세월이 가장 긴고양이중 하나라서일수도 있고..(쪼꼬보다도 더 먼저니까..) 어쨌든 나는 만년 양양이 팬클럽회장임;

    2009.09.04 21:18 신고
    •  Addr  Edit/Del YahoMay

      어, 나는 감정 조율에 자신있는 나 같은 사람도 떠나보내고서 아무리 사진을 보고 보고 또 봐도 다시 볼때마다 눈물이 툭툭 떨어지는 그런 녀석이 있구나 싶어서 계속 신기한데.

      2009.09.05 00:18 신고
    •  Addr  Edit/Del 시마리스

      내가 보는 언니모습이 전부는 아니니까 언니가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과 어떤마음일지 하는 내 상상이 짬뽕이되서 나한테는 그렇게 뜨끈한 마음이 들게하나봐요.
      한겨울에 빠져나오기싫은 이불속같은..양양의 덫;;;

      2009.09.05 00:40 신고
  8.  Addr  Edit/Del  Reply 뮤즈

    한동안 냥이네를 떠나있다가 양양 소식 듣고 달려와봅니다.
    항상 의연해보였던 메이님..
    그리고 항상 메이님 뒷자리에 있던 양양,
    지금도 그모습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자리 그대로 양양이 있을것같네요..

    2009.09.21 01:08
  9.  Addr  Edit/Del  Reply heres

    양양이가 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프로필을 읽어봤어요
    어릴 때 사진부터 사소한 일상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게 없네요

    2010.02.04 16:43
  10.  Addr  Edit/Del  Reply 차차맘

    재구글을 먼저 읽어서...양양은 읽어도 무덤덤하리라 생각했는데....
    남은가슴도 무너지네요...
    그랬구나...그랬었구나...양양...

    2010.04.17 20:15
  11.  Addr  Edit/Del  Reply 비야

    최고의 카리스마로 기억되요..전
    멋진여자 양양이...

    2010.04.25 01:47
  12.  Addr  Edit/Del  Reply 보현문수맘

    첨부터 넘 즐겁게 봤는데 마지막 이 넘 슬퍼서 눈물이 나서 울었어요 저도 신부전으로 이식을 받았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이 동거동락할땐 좋은데 떠날때는 언제나 슬프네여~~

    2010.05.31 22:06
  13.  Addr  Edit/Del  Reply 아마조나

    뒤늦게 발견한 이곳에서 웃으며 사진들을 접하다 양양이와 메이의 프로필을 보고있노라도
    눈물이 주체할수 없네요.. 잠깐 잠깐 들여다 보는 제가 이럴진데...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더 마음이 막막하네요!!
    그래도 양이들은 언제나 행복할꺼라고 생각합니다...좋은 주인과 함께이기에 ㅠ.ㅠ

    2010.07.02 12:26
  14.  Addr  Edit/Del  Reply 네꼬

    나도 모르게 읽어내려가는동안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네요

    2010.07.14 18:18
  15.  Addr  Edit/Del  Reply 아렌

    아아...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집사 밑에서 관심받으며 산 건 행복한 것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되는 글이네요.

    2010.09.09 05:56
  16.  Addr  Edit/Del  Reply 바람의라이더

    아...눈물이 너무 나네요....
    분명 행복한 곳에서 님 보고 있을겁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네요...

    2010.12.23 19:05
  17.  Addr  Edit/Del  Reply 쟈반

    음, 처음에는 너무 귀엽다라면서 보고 중간쯤에는 이녀석 후덕하구만 하고 봤는데
    마지막에 너무 속상하네요..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2011.01.19 14:03
  18.  Addr  Edit/Del  Reply 하늘을달려라

    양양이라는 이쁜 냐옹이가 있었군요....
    저는 냥이들 키운지 4개월 밖에 안된사람인데...
    이렇게 이별을 한다는 생각을 아직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어요..
    마음이 찹찹해요..ㅠㅠ

    2011.02.15 09:47 신고
  19.  Addr  Edit/Del  Reply 쌤엄마^^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점점 눈물이 나오네요!! 옆에있는 울냥이녀석"쌤"이 엉덩이 삐죽내밀고 앉아있는데 양양이가 관심받고싶을때 했다는2003년사진하고 넘 비슷해서 또 울컥.....첫애기라 더더욱 생각이 나실듯해염!!!!!!!! 좋은곳에서 행복하게 잘있겠죠~~~~~~

    2011.02.19 09:23
  20.  Addr  Edit/Del  Reply 정미정

    전 첫번째 고양이를 처음 키울때 부터 언제든 이별할 수 있겠구나, 많이 슬프겠지만 그래도 살아 가겠지.. 했었는데
    남의 집 고양이 보고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사실 까망이 키우기 전에는 고양이가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데..

    2011.06.16 01:18
  21.  Addr  Edit/Del  Reply 신지현

    식사를 통해서 들어왔는데....
    글 더 못 읽겠어요..일하다가 울뻔 했습니다...저도 열살된 이묘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요.....아..가슴이 너무 아파서 말을 할수가 없네요....

    2012.02.23 13:32